산행 일시 :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어제까지 엄청내린 장맛비로 동천이 범람하여 도심을 잠기게 했던 비도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
오늘은 아침부터 산행에 나선다.
멀리 가기에는 준비가 안된 상태이고 그냥 배낭에 카메라를 넣고 도심 산행을 한다.
구봉산 올라가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등산로
수정산을 찍고 범일동으로 하산을 하면서 .. 이중섭 거리를 들른다
이중섭 --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 군운면 송천리의 대지주 집안의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남.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온 이듬해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가 된다.
한국전쟁발발 후 1·4후퇴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서 살며 부두 노동을 하던 그는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해 12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범일동 1492번지의 귀환 동포마을 변전소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생활했다.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이중섭과 마사코(일본 분카카쿠잉 학교에서 만나서 결혼 함)는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마사코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이있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중섭은 가족을 떠나보낸 후
홀로 부산에 남아 낮에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술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는 광복동 일원의 밀다원, 금강다방, 그리고 부둣가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부산으로 피란온 예술가들과 친밀한 교분을 나눴다.
비록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화가 신세였지만 이 곳에서〈범일동풍경〉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킨다.
소 그림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는 '봄의 어린이' --
이그림은 고려시대의 도자기 겉에 새긴 '상감' 기법과 매우 흡사한 방법으로 그린 특별한 창작 그림이다
한국전쟁이 휴전될 무렵인 1953년 7월 말, 지인들과 처가의 도움으로 선원증을 발급받은 이중섭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돌아와서 ...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1956년 오랫동안 앓아 오던 간질환으로 숨을
거둡니다. <자화상> -- 소문처럼 정신병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으로 개명함)에게 보낸 편지
야스카타(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 전쟁으로 얼룩진 상처를 딛고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길 떠나는 가족'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 <흰소>, 떠받으려고 하는 소> 등 대표적인 소 그림은 통영에서 그려짐
김정희의 추사체를 연상시키는힘차고 울림이 풍부산 선을 구사한 '흰소'
우리나라의 경제가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지면서 이중섭에 대한 평가는 폭발적이였고, 1978년에 이중섭에게 문화훈장을
주어졌고 , 1979년에는 그의 부인이 간직하고 있던 엽서 그림과 알루미늄 박지에 그린 그림 등 모두 200점 가까운 작품이 서울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처음 공개 되었다.
불운한 시대를 만나고 고약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화폭을 부여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술혼을 쏟아 부은 민족을 사랑
한 화가 '이중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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